나이 들었다고 느낄 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병에 다시 걸렸다.
며칠 전, 아무런 실용적인 이유도 없이 FreeBSD 장비를 하나 마련했다. 현재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 RAM 1GB 짜리 초소형 장비이다. 그런데 필요한 일이 있으면 Ubuntu나 Amazon Linux 같은 걸로 준비하면 되지 왜 FreeBSD인가. 10년 전이라면 스스로 아주 작은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이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솔직히 말해 그 때는 이 두 OS가 비슷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Linux의 편리함이 압도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다.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장비 설정에만 몇 시간을 써야 하는 이 짓을 또 하고 있으니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어쩌겠는가. 그러니 불치병이지 뭐.
아무튼 기본적인 설정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패키지 설치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rolling release 시스템이 아닌지라 오래된 패키지들이 눈에 띈다. Linux 장비라면 요즘은 시스템 패키지 관리자가 아닌 brew나 asdf 같은 유저모드 패키지 관리자가 넘쳐나니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FreeBSD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동안 BSD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지금 생각나는 건 /usr/ports, 즉 소스 컴파일을 통한 설치밖에 없다.
“아 그래. 잊고 있었어. BSD는 이래서 불편하잖아.”
젊었을 때라면 까짓것 몇 시간이 걸려도 소스 컴파일을 해서 패키지를 설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장비에서 컴파일이 어려우면 덩치 큰 Linux 장비에서 크로스 컴파일을 해서라도 필요한 버전의 패키지를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그런 짓까지는 못하겠다. 일단 ports 시스템을 들여놓을 만한 디스크 공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그런 데에 시간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기껏 수고를 들여 준비한 FreeBSD 장비를 다시 날려 버리고 Linux를 쓰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무엇보다도 이제는 소스 컴파일이 탄소를 발생시키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 방법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집에서 쓰는 로컬 장비에서도 소스 컴파일 할 때면 팬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층간 소음처럼 발생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젠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걸 그냥 가져다 쓰고 싶다. 바퀴를 또 발명할 일이 뭐가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