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l NUC
며칠 전 큰딸이 6년 동안 쓰던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이제 고물이 되어 버린,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멀쩡한 그 컴퓨터를 어디에 쓸까 잠시 고민하다가, 가정용 메일 전송 서버로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디스크의 내용을 모두 밀고 FreeBSD를 깔아 보았다.
처음에 컴퓨터를 장만해 줄 때에도 일부러 고사양 게임은 할 수 없도록 미니컴퓨터를 장만해 주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딸이 좋아하는 게임은 저사양의 인디 게임들이라 컴퓨터 성능을 크게 타지 않았고, 그래서 아빠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나름 알차게 게임 머신의 역할을 해 주었다. 이 장비는 지금은 미니컴퓨터 시장에서 철수한 인텔에서 만든 NUC라는 컴퓨터인데, 오늘 내가 사용해 보니 두 가지 면에서 놀랍다.
일단 미친 듯이 조용하다. 팬 돌아가는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 혹시 인텔이 설계 당시 팬을 일부러 뺀 걸까? 어떤 작업을 해도 본체가 뜨거워지지 않는다. CPU 사양 자체가 원래 열에너지를 만들 수 없도록 성능이 낮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감동적인 수준으로 소음이 없다.
둘째, 눈물나게 느리다. 딸이 이걸로 게임을 했다고? 정말 게임이 되나? 같은 사양은 아니지만 AWS의 2 core CPU에 8GB RAM을 갖춘 인스턴스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작업을 시켜 보니 당황스럽다. 네트워크 속도는 문제 없으니 인터넷으로 바이너리 패키지를 받아서 설치하는 것은 문제 없는데, 소스코드 컴파일 속도는 어처구니 없이 느리다. 애초에 셀러론과 비교한다는 것이 제온에게 불경한 일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서 오늘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개발 장비로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불합격. 저렇게 느려서는 정신 수양에 뜻을 두지 않는 한 써먹을 수준이 아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구형 랩탑도 저렇게까지 느리진 않다.
둘째, 서비스 장비로는 여전히 현역으로 뛰어도 문제 없을 정도다. 특히나 메일 전송 서버로는 이보다 더 좋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스팸 메일을 대량 발송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소규모 스타트업이 사용해도 충분할 듯. 메일 서버 외에도 콘솔 로그라이크 게임 서버로 쓰기에도 차고 넘친다. 웹서버가 아니라 gopher나 gemini 호스팅 장비로는 혼자 쓰기엔 아깝고 다른 사용자들에게 월세를 놓아도 될 듯.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이 장비를 돌려야 할 지에 대한 판단은 내리기 어렵다. 요즘 AWS Lightsail 8GB RAM 인스턴스를 하나 돌리면, 부가적인 비용이 더 발생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 달에 40 달러인데, 이런 장비를 집에서 돌리면 성능이 그만큼 나오지도 않는데 전기 요금은 얼마나 더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는 데다가, 24시간 서버가 잘 돌아간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
한 달 돌려서 전기 요금 청구서 받아 보고 정할까.
hw.model: Intel(R) Celeron(R) J4005 CPU @ 2.00GHz
hw.machine: amd64
hw.ncpu: 2
hw.physmem: 8116002816
kern.ostype: FreeBSD
kern.osrelease: 14.0-RELEASE-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