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음주
어제 큰딸이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올해부터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가 된 큰딸이 며칠 전부터 관련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와 선배들에게 경험담을 듣고, 그들로부터 어떤 술이 좋을지 추천도 받았다고 한다. 2023년의 마지막 날, 드디어 가게에 가서 신분증만 제시하면 술을 사도 된다는 사실에 나름 뭔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였는지 약간 들뜨기까지 한 큰딸. 하지만 별로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건 딱히 노력해서 얻어낸 지위가 아니지 않은가. 그저 기다리면 되는 건데 뭘 그리 기뻐할 것까지야. 운전면허를 땄으면 몰라도.
아무튼 2024년의 날이 밝았고, 연휴 마지막 날까지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엄마 아빠가 딸들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집을 나섰다. 선배들로부터 술은 아무래도 부모님과 함께 시작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 큰딸에게, 말 나온 김에 당장 결행하자고 하여 갑작스럽게 저녁에 맥주 파티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거하게 먹자는 건 아니고, 산책하러 나간 김에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캔맥주 하나씩 사와서 먹자는 얘기였다. 최근에는 주로 무알콜 맥주를 마시는 나로서도 특별한 날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알콜 있는 걸로 하나 골랐다.
다들 그렇겠지만 처음 맛본 술은, 특히 맥주는 별로 맛이 없단다. 함께 사온, 탄산이 들어간 청하가 오히려 맛으로 치면 더 좋단다. 맛도 없는 걸 그럼 왜 먹냐는 작은딸에게, 시원한 맛으로 먹는 거지 특별한 건 아니라고 말해 줬다. 딸은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 말고는 특별히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훨씬 술을 잘 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근데 이걸 축하해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내 첫 음주의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이었다. 학력고사를 100일 앞두고 동무들과 해운대에서 막걸리를 한 잔 먹었는데, 달달한 것이 나름 맛이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한 잔을 마시고 그만 취해 버렸다. 문제는 내가 취한 줄도 몰랐다는 것. 그 길로 집까지 비틀거리며 들어갔는데, 현관에서 어머니가 아들 행색을 보고는 바로 한 마디 하셨다.
“대체 어디서 술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냐."
“제가요? 저 술 안 먹었는데요?"
“그냥 얘기할래, 맞고 얘기할래?"
“예,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먹었어요. 그런데 티가 나나요?"
“거울을 봐라. 네 얼굴이 지금 어떤지.”
그렇게 어른들께 말씀도 안 드리고 친구들과 술 먹었다고 혼났다. 어머니가 길게 말씀은 안 하셨는데 나 스스로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술을 먹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술을 안 먹는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술먹기 게임 같은 걸 해서 단시간에 취한 다음에야 흥이 난다고 하니, 누구의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술이 약한 사람으로서 예전의 술문화는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윗사람이나 선배가 권하는 술을 마다하면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주는 술 받아먹고 그 다음날까지 괴로운 적이 많았다.
딸에게 담배는 아예 하지 말고, 술을 먹긴 먹되 많이 먹지는 말라고 일러 두었다. 억지로 술 권하는 사람 있으면 정색하고 거절하라고. 하긴 이런 말이 다 의미 없을 수도 있다. 누가 아는가. 나중에 오히려 우리 딸이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는 사람이 될지…